쉬어가는 마당/재미있는 외국이야기

홍등, 홍등가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24. 3. 22. 10:34

           ●재미있는 외국이야기-176●

                   “홍등, 홍등가”

"홍등" 예전 중국영화들 중 하나.

장이모 감독, 공리 주연의 홍등, 잔잔하지만 고대 중국문화를 잘 표현한 명화 중의 명화

4명의 부인을 둔 진대인.

저녁 잠자리에 간택을 받으면 문 앞에 걸리는 홍등

첩의 위치가 되었다는 표시, 등을 거는행위 괘등

오늘 밤 간택의 표시로 불을 밝히는 홍등

행동거지가 불손하면 내려지는 등을 봉쇄하는 봉등

평생을 홍등만 걸리기를 바라보는 여인들의 삶. 애처롭고, 잔인하다.

홍등가로 불리었던 우리의 유흥가도 이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중국 왕조시대에는 '일부다처제'를 시행했는데, 엄격한 의미로 말하면 이는 일부다처제가 아니라 '일부 일처 다첩제'이다. 문무대관이나 부호들은 모두 한 명의 정처를 두었고 나머지는 모두 첩이었는데 이러한 습속은 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황제 또한 단 한번의 결혼 즉 대혼하는 정처가 바로 황후이고, 나머지 선발하여 입궁하는 비빈들은 황제의 첩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사료나 드라마에 보면 황제는 정처인 황후 이외에 '후궁 미인 3천여명'을 두고 있었다. 황제의 결혼은 대혼이라하여 단 한번 황후와 하는 것이고,

나머지 황제의 여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열서너살의 처녀들 중 선발하였다. 선발된 선수들은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입궁하였고, 최종적으로 간택된 비빈들은 혼례는 치르지 않고 후궁에 두었다.

고대 중국에서도 결혼은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라, 몇가지 중요한 절차와 습속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요동방(闹洞房: 신혼 초야에 친구나 친척들이 떠들썩하게 신혼부부를 놀리며 노는 풍습), 갈교배주(喝交杯酒: 팔짱을 끼고 합환주를 마시는 풍습) 또는 땅콩을 먹는 풍습, 대추를 먹는 습속 등이 있었다.

​황제의 결혼식에도 마찬가지로 지켜야할 습속이 있지만, 황제의 대혼일에는 민간의 요동방같이 떠들썩하게 신혼부부를 놀리는 절차는 없었다.

황가의 어른들과 황족,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연히 치뤄야할 의식을 거행하고나면, 황제는 황후와 둘이서 궁으로 돌아갔는데 여기가 바로 황제와 황후의 동방(洞房: 신방)이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자금성의 태감 한 사람이 만년에 출궁하였는데, 그는 죽기 직전 황제의 대혼과 관련된 작은 비밀 하나를 털어 놓았다.

황제가 황후를 맞이하는 대혼 당일 저녁, 첫 잠자리에 들기전 황후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자손발발(子孙饽饽)'이라는 교자(饺子: 중국 만두)이다.

​자손발발 교자는 일종의 설 삶은 익지 않은 교자인데, 어선방에서 교자를 삶다가 반쯤 설 삶았을 때 황후에게 먹도록 갖다 주었다. 그러면 황후가 교자를 먹을 때 옆에 있던 궁녀가, '셩부셩(生不生: 익었습니까? 익지 않았습니까?)'라고 묻는데, 이때 황후는 바로 '셩(生: 익지 않았어)' 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때 황후가 회답한 '셩(生)'은 중국어로 '익지 않았다'는 뜻도 있지만, '아기를 낳는다'는 의미도 있는 말이다. 황후도 하루빨리 제왕의 아름다운 자손을 낳고 싶겠지만, 후손이 번창하는 것은 황실 가족 모두의 염원이었다.

황가의 후손이 번창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담아 중국어의 언어유희를 표현한 습속인 것이다.

​그리고 민간에서 신방 합방시 합환주를 마시듯, 황제 황후의 대혼때에도 역시 합환주를 마신다. 단, 황제 대혼의 합환주는 명칭이 '합근예(合卺礼)'라고, 훨씬 더 고상하고 어려운 용어를 사용할 뿐이다.

‘근(卺: 술잔 근)'은 대혼 때 사용하는 2개의 합환주 술잔을 의미하는데, 황제 황후가 '합근예'를 행하는 것은 대혼후 행복하고 원만한 생활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모든 혼례의식과 합방의 습속을 거행한 후에, 황제와 황후는 비로소 합방을 진행하게 된다.

드라마 중에서 황제의 대혼 장면을 거의 볼 수 없는 것은, 고대 사람들은 결혼이 아주 빨라서, 대부분 황제는 즉위전에 이미 결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황제의 대혼에는 왕왕 정치적 고려에 의한 혼례가 있어 황제와 황후가 반드시 행복한 것만도 아니었다.

청조말 광서제가 유융황후(裕隆皇后)를 기피하고 진비(珍妃)를 좋아하듯, 이러한 요인들이 다수의 황제들이 황후보다는 나중에 선택한 비빈을 좋아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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