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마당/재미있는 외국이야기

직시해야 하는 문화 현주소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24. 3. 7. 13:09

            ●재미있는 외국이야기-173●

           “직시해야 하는 문화 현주소"

천조(天朝), 상국(上国), 대국(大国)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과거 중국을 부르던 떨리는 목소리들이다.

이 같은 명칭들이 의례적인 호칭이든 정치적 호칭이든 간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겐 이미 망각된 것들이다.

과연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우리들의 문화적 자각과 혜안이 있는 것인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덮혀졌던 조선왕조실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펴고 조공의 역사를 쓰려는 중국의 붓대가 다시 움직이고 있건만 우리는 너무도 태평하다.

14억?을 바라보는 현재 우리들의 문화적 옷단추는 바로 끼워져 있는가?

교과서에서 많이 배웠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 역사문헌과 조선왕조실록를 보면서 한반도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저절로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이 솟는다.

우리에게는 이상한 콤플렉스가 있다. 즉, 일본은 철저한 정신이 무서워서 배워야 하고, 미국은 돈 많고 초강국이니 말을 들어야 하고, 중국은 과거의 대국이고 미래의 초강대국이니 미리 알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게다가 같은 동포인 북한은 핵에다가 심리상태까지 불안정하므로 무서워서 못 건드리니 도대체 언제 우리는 기 좀 펴면서 살 수 있는 것인가?

중국인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는 두리뭉실 넘어가고, 또 예로부터 우리는 문화적으로 형제우의를 돈독히 해 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리저리 계산 복잡하게 할 것 없이 예전처럼 지내자고 한다. 그래서 대국사람들 앞에서 째째하게 이것저것 따지는게 쫌스러워 호기 있게 맞받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차츰 굳어져 가는 몇가지 이미지가 있다. 중국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덧붙이는, 사려깊고 침착하고 신중한 등의 후한 형용사가 그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중국에 꽉 잡혀 있기 때문에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에 밑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비위에 거슬리지 않아야 통일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만 진행된다면 한반도는 영락없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권 안에 옴팍 빠져들고 말 것이다.

즉, 이와같은 중국에 대한 착각과 과대평가, 그리고 환상적이고 사대주의적인 역사의식은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 마술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태풍권에 들어서서 일기예보 통보관의 예보만 바라보아야 하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36년간 강점했던 일본에 대해서는 극도의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를 갈면서 미워한다. 그러나 중국문화에 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다. 아니 절대적으로 무방비다. 이쪽은 지금 완전히 프리패스이다.

36년 곱하기 수십배 이상 동안, 수많은 침략과 간섭 속에서 우리 할머니들을 욕보인 숫자가 역사적으로 훨씬 많은 것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죽은 우리의 장정들이 신라나 고구려가 당나라를 대적해 싸울 때 죽은 숫자보다 많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병자호란 등의 수많은 전쟁 속에서 고통을 겪었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제 강점 36년 때보다 적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100만명의 중공군을 줄줄이 엮어서 한반도의 허리 절단을 결정적으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더구나 요즘에 보면, 중국은 어느날 평화체제 운운하며 우리정부를 혼비백산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아홉시 뉴스를 보면 별말도 아닌, 완전히 의례적인 표현과 행동에 그것도 전화 한 통화에 '중국의 태도가 바뀌었다'라고 좋아했다.

선후문제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은 애매모호 그 자체 였는데도 말이다. 외교력 부재와 무지의 극치이다. 먼저 주먹으로 코피를 터뜨리고 일회용 반창고를 준 격이다.

이렇게 짚어 본다면 중국과 마주 앉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음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있다. 눈앞의 순간적 현실에만 급급하여 민족의 미래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서구의 거칠음과 일본의 저속이 몰려드는 문화의 틈새를 비집고, 중국은 과거부터 깔아 놓았던 실크로드 밑으로 조용히 잠식해 오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참모습을 살펴보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조공의 역사를 되풀이해야 한다.

즉, 우리의 정신은 또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엉뚱한 계산착오로 전근대적인 사고와 사회주의 그림자를 끌어 안고 헤매는 중국에게 다시 발목을 잡힐 순 없다. 암울한 사대외교를 청산하고 새로운 우리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중국의 문화주소가 몇 번지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며 그곳에 역사의 소환장을 보낼 배짱을 키워야 한다.

또, 우리들의 문화주소도 몇 번지 몇 호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 쓰고 있는 한국 길들이기의 음흉한 시나리오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옛 친구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란 중국 속담을 한번 더 생각하며 중국인들을 대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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