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마당/재미있는 외국이야기

중국 역사속의 유대인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24. 1. 21. 14:27

          ●재미있는 외국이야기-158●

             “중국 역사속의 유대인”

아랍측 역사서 “중국과 인도 여행기”에 따르면 당나라 치세 878년 황소의 난 때는 황소의 반란군이 광저우에 체류하던 페르시아인과 아랍인, 유대인 포함 12만을 죽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수치는 광저우에 체류하며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의 통제를 받던 동남아인들까지 포함한 수치로 추산된다.

여러 기록이나 정황으로 보아 북송 때부터 카이펑(開封)에 살기 시작해 적어도 청 말기까지는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카이펑에 살던 유대교도들의 선조는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1163년 우스타드 레위가 시나고그(유대교회당)를 건설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에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서구 세계에 알린 것은 17세기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로 알려져 있다.

1605년, 마테오 리치는 카이펑 출신의 애전(艾田)이라는 60살 노인을 만났는데 자신이 유대교를 믿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명나라 황제로부터 애, 석, 고, 김, 이, 장, 조의 7개의 성을 하사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성인 에즈라, 시몬, 코헨, 길버트, 레비, 조슈아, 조나단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카이펑에는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걸로 보이는 비석이 몇개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이츠러예(一賜樂業:이스라엘)족이라 일컬었다 한다.

다만 해당 비석 내용은 후술하듯 신빙성이 없는 내용이 많아 삼국유사 비슷하게 신화적인 차원으로 생각해야지 실제 역사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카이펑의 유대인들은 명대까지 번성했으나 명말청초의 혼란기에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결국은 중국인에 흡수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극히 일부가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대까지 내려왔다.

카이펑 유대교도들 중에서 석씨(시몬)가 그나마 유대교 율법을 잘 준수하는 편으로, 돼지고기를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돼지 뒷다리나 둔부의 힘줄은 먹지 않으며, 유월절에 양고기를 삶고 양의 피를 바른다고 한다.

나머지는 유대인 후손이라는 자각만 간신히 있을 뿐이다.

참고로 원래 유대인 음식 코셔 푸드에서는 돼지고기가 절대 금지되고 양고기나 소고기의 경우에도 뒷다리나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