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마당/재미있는 외국이야기

상업, 망국의 슬픈 역사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23. 4. 19. 11:10
   ●재미있는 중국이야기-69

   “상업, 망국의 슬픈 역사

상업.상행위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를 상행위라 하고, 상행위를 하는 일을 상업이라 한다. 상업을 하는 사람을 상인이라 부른다.

비단장수 왕서방 이라 일컫는 중국 상인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평등의 공산주의로 묶여서 잠시 멈춘듯한 상업 유전자의 소유자들.

지금 놀라운 경제발전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 몸의 혈관에는 오로지 전(钱)의 피만 흐르고 있는 듯 하다.

불의는 참을 있으나,
불이익 참을 없다
요사이 젊은 중국친구들 한테 자주 듣는 이야기다.

상업의 유래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상업이라고 하게 계기는 무엇일까?

상업이란 단어에는 나라 잃은 사람들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무왕은 목야 전투에서 은을 무너뜨렸다. 주왕은 대군을 동원하여 무왕을 막으려 했으나, 주왕의 군대는 오히려 왕의 뒤통수를 때렸고, 이에 무왕의 군대가 몰려오자, 주왕은 불길에 몸을 던져 장렬히 산화하였다.

이렇게, 중국의 주인이 주로 바뀌었지만, 은의 잔존 세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으며, 따라서 무왕은 은의 도발을 막으면서 한편으로 결집도 막아야 했다.

따라서 무왕은 주왕의 아들 녹보를 죽이지 않고, 그를 제후로 봉하며 유화책을 편다. 물론 그를 마냥 놔둘 수는 없으므로, 형제인 숙선과 , 숙도를 주변의 제후로 봉하여 그를 감시하도록 하였다. 이들을 삼감이라 칭했다.

무왕이 죽은지 2... 녹보와 삼감은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삼감은 서쪽에 있는 주의 호경과는 거리가 꽤나 떨어진 하남에 있으면서 자신들이 권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은의 녹보는 여전히 아버지가 무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복수심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회수 주변의 이민족들하고도 동맹을 맺으면서 세력을 키워 나가던 중 삼감이 중앙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접수한다.

녹보가 이런 기회를 놓칠리 만무. 그들과 손을 잡은 중앙으로 진격했다.

한편, 이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에 왕실은 혼란에 빠진다. 주의 왕족이 반란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를 무작정 토벌하는데 부담을 느꼈던 .

그러나 주공 단은 선례를 남길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강력한 토벌을 주장했다. 반대가 많긴 했지만, 소공 석이 주공 단의 편을 들면서, 토벌이 시작되었고, 3년간의 토벌전을 거쳐 녹번을 살해하고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반란이 끝났지만, 주나라는 후대의 국가들처럼 반란자들의 구족을 멸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매우 인간적.

녹보는 살해되었고, 삼감중 숙선만 죽었지 나머지 둘은 목숨을 부지할 있었다. 또한 녹보는 살해당했지만, 은의 제사가 이어질 있도록 녹보의 형제인 미자개를 제후로 봉했다.

그러나 주공은 은나라의 세력이 다시 뭉쳐 반기를 들까 걱정 되었지요. 그래서 유민들이 힘을 모으지 못하도록 여기 저기 전국 각지로 흩어 놓기로 합니다.

이렇게 되자 은의 유민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시작되었다. 우선 부여 받은 토지는 좁았고, 비옥하지도 않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주민들의 시선도 차가웠다.

따라서 그들은 물자 교역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같은 설움을 겪는 사람들간에 느낄 있는 동질감에 그들은 보다 끈끈하게 뭉칠 있었고, 이런 감정으로 생긴 네트워크는 교역망을 장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에는 상나라 사람(商人)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상업. 후세에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출신과는 상관 없이 이들을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상인(商人)이라 불렀다.

이렇게 물건을 교역하는 행위를 상업이라고 부르게 이유에는 망국과 그로 인한 차별을 이겨내고자 사람들의 몸부림이 담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