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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진나라와 흉노의 맞짱

신바람투어/HL4CCM/김재호 2023. 8. 22. 10:41

           ●재미있는 중국이야기-122●

       “만리장성, 진나라와 흉노의 맞짱”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 세계 불가사의의 건축물중 하나.

중국역사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나라.

아마 그 당시로는 세계 최강의 군사와 전투력임이 분명하다.

오로지 방어를 위한 백성들의 고혈을 빼는 무리한 만리장성 축조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신망을 잃고 망국의 원인이 된다.

왜 진나라는 흉노와의 맞짱 전투를

피하고 방어를 위한 만리장성축조를 선택했을까?

진나라는 6국을 통일한 후 몽염에게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를 물리치고 장성을 만들어 방어케 했습니다.

그때 당시 진나라에 백만 대군이 있어서 흉노를 제거하기에 충분했지만 왜 공격을 택하지 않고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자 더 많은 인력과 물력을 들여 장성을 만들었을까요?

오늘은 네가지 이유로 진나라가 흉노를 제거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변경이 너무 길어서 방어에 불리했습니다. 진나라가 6국을 통일하기 전에 조나라와 연나라와 함께 북방 유목 민족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통일한 후 길게 뻗은 변경은 진나라가 혼자서 방어해야 했는데요, 변경이 너무 길었던 탓에 흉노가 말을 타고 들어와 약탈을 한 후 도망을 가버리면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갔을 땐 이미 온데간데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변경에 장성을 세움으로써 적어도 흉노가 말을 타고 들어오기 힘들게 되었고, 흉노가 나타났을 때 봉화대에 불을 피워 멀리까지 알릴 수 있어서 흉노를 토벌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둘째, 흉노를 완전히 섬멸하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진나라와 흉노가 정면 충돌을 한다면 진나라의 군사력으로 흉노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흉노는 유목 생활을 하였기에 기동성을 충분히 이용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공격을 하니 정면으로 싸우기 힘들었습니다.

거기에 진나라 땐 교통조건과 운송수단이 발전되지 않아, 중원에서 변방에 군량을 옮기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1석의 군량을 옮기는데 200석의 식량을 써야 했으니 흉노를 섬멸하는데 드는 보급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장성을 만들어서 흉노를 한곳에 가두어 둔 후 각개 격파를 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셋째,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내우외환에 시달렸습니다. 비록 진나라는 6국을 통일하였지만, 멸망된 나라의 귀족들은 진나라에 복종한 게 아니라 반란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령 남쪽의 상황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에서는 흉노가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니, 진나라의 입장에서 흉노와 전쟁을 할 경우 두 개의 전장에서 싸워야 했기에 새로운 제국이었던 진나라는 먼저 내환을 평정하여 정권의 안정을 찾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장성을 만들어 잠시 흉노를 방어하여 북방에서 큰 사태가 일어나는 걸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성의 북쪽은 전통적인 농경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시 장성 밖에 땅은 계륵 같은 존재라 포기하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이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장성이 위치한 곳은 고대에 400mm 연 강수량의 분계선이라 마침 그때 당시의 농경지와 유경(幽境)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또한 진나라 때 인구가 많지 않았기에 토지 수요에 대한 부담도 적어서 굳이 강수량이 적은 북쪽까지 가서 경작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과감하게 장성을 세웠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