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중국이야기-122●
“만리장성, 진나라와 흉노의 맞짱”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 세계 불가사의의 건축물중 하나.
중국역사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나라.
아마 그 당시로는 세계 최강의 군사와 전투력임이 분명하다.
오로지 방어를 위한 백성들의 고혈을 빼는 무리한 만리장성 축조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신망을 잃고 망국의 원인이 된다.
왜 진나라는 흉노와의 맞짱 전투를
피하고 방어를 위한 만리장성축조를 선택했을까?
진나라는 6국을 통일한 후 몽염에게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를 물리치고 장성을 만들어 방어케 했습니다.
그때 당시 진나라에 백만 대군이 있어서 흉노를 제거하기에 충분했지만 왜 공격을 택하지 않고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자 더 많은 인력과 물력을 들여 장성을 만들었을까요?
오늘은 네가지 이유로 진나라가 흉노를 제거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변경이 너무 길어서 방어에 불리했습니다. 진나라가 6국을 통일하기 전에 조나라와 연나라와 함께 북방 유목 민족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통일한 후 길게 뻗은 변경은 진나라가 혼자서 방어해야 했는데요, 변경이 너무 길었던 탓에 흉노가 말을 타고 들어와 약탈을 한 후 도망을 가버리면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갔을 땐 이미 온데간데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변경에 장성을 세움으로써 적어도 흉노가 말을 타고 들어오기 힘들게 되었고, 흉노가 나타났을 때 봉화대에 불을 피워 멀리까지 알릴 수 있어서 흉노를 토벌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둘째, 흉노를 완전히 섬멸하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진나라와 흉노가 정면 충돌을 한다면 진나라의 군사력으로 흉노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흉노는 유목 생활을 하였기에 기동성을 충분히 이용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공격을 하니 정면으로 싸우기 힘들었습니다.
거기에 진나라 땐 교통조건과 운송수단이 발전되지 않아, 중원에서 변방에 군량을 옮기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1석의 군량을 옮기는데 200석의 식량을 써야 했으니 흉노를 섬멸하는데 드는 보급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장성을 만들어서 흉노를 한곳에 가두어 둔 후 각개 격파를 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셋째,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내우외환에 시달렸습니다. 비록 진나라는 6국을 통일하였지만, 멸망된 나라의 귀족들은 진나라에 복종한 게 아니라 반란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령 남쪽의 상황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에서는 흉노가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니, 진나라의 입장에서 흉노와 전쟁을 할 경우 두 개의 전장에서 싸워야 했기에 새로운 제국이었던 진나라는 먼저 내환을 평정하여 정권의 안정을 찾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장성을 만들어 잠시 흉노를 방어하여 북방에서 큰 사태가 일어나는 걸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성의 북쪽은 전통적인 농경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시 장성 밖에 땅은 계륵 같은 존재라 포기하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이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장성이 위치한 곳은 고대에 400mm 연 강수량의 분계선이라 마침 그때 당시의 농경지와 유경(幽境)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또한 진나라 때 인구가 많지 않았기에 토지 수요에 대한 부담도 적어서 굳이 강수량이 적은 북쪽까지 가서 경작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과감하게 장성을 세웠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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