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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상저, 성교육 혼수품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23. 6. 30. 11:09
       ●재미있는 중국이야기-101●

        “압상저, 성교육 혼수품”

예전에는 혼수품 때문에 결혼전에 많은 분란이 있었다.

압상저.
고대 중국의 혼수품 중 하나
과연 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까?

먼 옛날 고대 중국의 혼수에는 어떤 물건들이 들어갔으며, 이런 관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말의 혼수(婚需)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가장/嫁妝” “장렴/妝奩” “염구/奩具” “가자/嫁資”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춘추 시기, 노(魯)나라 대부 원파(轅頗)가 국가의 토지 자원을 관리하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구역의 토지에 대하여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이 세금을 노나라 애공(哀公)의 딸 혼수 비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이러한 습속이 있었는데, 딸을 혼인시킬 때에는 반드시 혼수를 준비하여야 했다. 위(衛)나라의 민간에서는 여자들이 출가할 때 ‘그대는 수레를 보내시오, 나는 물건을 준비하겠소.’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는 신랑의 집에서 수레를 보내 신부측이 준비한 혼수품을 실어갔다는 말이다.

전국(戰國) 시기가 되자, 여자측의 혼수 준비는 이미 보편적인 사회 현상이 되었다. 초(楚)나라 무덤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여자들의 혼수에는 수십량의 수레에 실은 물건 외에도 거위, 개, 돼지 등의 많은 가축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돼지나 개와 같은 가축은 일반 가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재산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었고, 이것들은 혼수 용품에 포함할 만큼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고대 여성의 혼수품에는 이처럼 많은 물건이 포함될 수 있었는데, 집이나 땅과 같은 부동산 외에는 원칙적으로 모두 가져갈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일상생활에 실제로 사용하는 것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청나라 때 흑룡강(黑龍江) 지역에서는 신발, 옷, 패물, 심지어는 세수대야, 수건, 비누까지도 가져갔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 사회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일부는 현대 사회에서 볼 수 없는 상상 밖의 것들도 있다. 도대체 뭐가 있을까?

손 자수(刺繡) 공예 도구

고대 여성들에게 자수 기술은 자신의 가치를 알려주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남편들도 아내의 자수 솜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고대 중국의 안방 규수들은 외출이 쉽지 않았으므로 아예 집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집에서 심심할 때,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것은 수를 놓은 것이라고 한다.

몸종

신부가 친정에서 데리고 부리던 몸종을 혼수품의 하나로 데려 가는 것이다. 춘추전국시기, 귀족들은 딸이 출가하게 되면 딸의 노비(奴婢)나 몸종, 또는 여동생, 심지어는 여자 조카를 함께 보냈다. 이러한 풍습은 당시에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잠자리 용품

원앙이 수(繡) 놓아진 이불, 베개 등의 침구는 지금도 사람들이 매우 중시하는 혼수 용품이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모두 홍색으로 디자인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대부분 백색(白色)이었으며, 신혼 다음날 신랑의 부모는 이 백색 이불(被/피)과 요(褥/욕)를 검사(?)하게 된다. 현대적인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이밖에 특별히 만든 바지를 가지고 가기도 하였는데, 이 바지는 어린 아이의 바지처럼 밑이 뚫ㄹ 있는 형태였다. 이것은, 신부가 첫날밤에 느끼게 될 부끄러움을 최소화하면서 밤일(?)을 원만하게 잘 치르도록 하기 위하여 고안된 특수 용도의 바지였다.

상복(喪服)과 관(棺)

이것들은 모두 상사(喪事)에 쓰이는 것들인데, 혼수용품에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 황당하다. 과거, 중국의 절강/강소 지역에서는 여자의 혼수품에 반드시 상복(喪服)과 관(棺) 목재를 포함하였다고 한다. ㄹ

상복은 시부모의 별세 때 입어야하는 마포(麻布)로 지은 것이었으며, 관 목재는 신랑이나 신부가 자신들의 삶의 마지막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해두는 물건들이었다.

관 재목을 운반하는 일이 불편할 경우, 사람들은 동등한 값의 금으로 만든 작은 모형 관(棺)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신랑측에서는 신부가 이러한 물건까지 준비해 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신부의 치밀함에 기뻐했다고 한다.

​성교육 도구-압상저(壓箱底)

고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내놓고 “성/性”을 이야기할 수 없었으므로, 이 방면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거나 심지어는 무지(無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자가 결혼하여 친정을 떠날 때 반드시 챙겨가야 하는 것 가운데 “압상저”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부부 생활의 모형을 만든 작은 기물을 뜻하며, 이 물건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었으므로 상자의 맨 바닥에 숨기듯 담아서 가져가는 물건이었다.

대부분 과일 모습의 용기 속에 남녀 교접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작은 자기(瓷器) 소품이며, 춘화(春畫)의 내용과 거의 같다. 친정어머니는 출가하는 딸에게 이 작은 자기 소품을 열어서 그 안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딸이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교육하였다.

또한, 시집가는 딸의 원만한 첫날밤을 위하여 친정 어머니가 “가장화/嫁妝畵”라는 그림책(춘화도첩/春畫 圖牒)을 준비하여, 딸로 하여금 몰래 보도록 하였다.

동한(東漢) 시기 장형(張衡)의 《동성가/同聲歌》에는 당시 한 여성이 첫날밤 겪었던 일과 심정이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에는“그림책을 잠자리 위에 펼쳐 놓고...(列圖陳枕张...)”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림책은 춘궁도(春宮圖)를 뜻한다.

춘궁도의 형식도 매우 다양해서, 복숭아, 사과, 배(梨) 등의 과일 형태에서 작은 배(船)나 물고기 또는 인형 등의 형태였다. 옥이나 돌로 만든 작은 조각품 등이 주류였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대부분 도자(陶瓷)로 제작된 것을 사용하였으며, 위아래로 열리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많았다.

“압상저”는, 성(性) 계몽 교육의 의미 외에도 아들 낳기를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이러한 기물은 중국과 일본에서 지금도 제작은 되고 있으나, 고대 사회에서처럼 혼수용품으로는 사용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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