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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재팬, 화약고, 타이완의 슬픈역사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23. 5. 27. 18:21

 

재미있는 중국이야기-87

리틀 재팬, 화약고, 타이완의 슬픈역사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하는 중국에게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인 부속 도서에 불구하다.

타이완 독립의자만 나와도 비분강개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할 시점에 중국친구들 한테 들은 이야기는 섬찟하다.

아시아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한반도가 아니라 양안이라 표현되는 중국과 대만이 될거라는 주장 이었다.

, 갈등속에 항상 대두되는 타이완.

타이완의 역사속에는 어떤일이 있었을까?

명나라 , 청나라 명나라 장군이었던 정성공은 청나라에 패하여 대만으로 도주를 합니다.

대만에 도착한 정성공은 네덜란드를 대만에서 몰아내고 정씨 왕조를 세워반청복명" 운동을 합니다.

반청복명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복원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정성공이 세운 정씨 왕조는 외세를 몰아내고 반청복명의 대의로 고군분투 하였으나

결국 1683년에 청나라에 복속되고 맙니다.

이때부터 청나라는 대만을 푸젠성 관할에 두고 대만을 통치하였습니다.

시기 청나라 푸젠성 주민들이 대거 대만으로 이주 하였고 이들은 이후 대만을 구성하는 국민 하나인내성인' 됩니다.

청나라 통치를 계속 받다가 1894 조선의 패권을 두고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 땅에서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이 바로 청일전쟁입니다.

전쟁은 1894 7 부터 1895 4월까지 벌어지게 되고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청나라는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전후 배상 문제를 협상하는데 협상에서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기로 협약합니다.

이로써 대만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후 대만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병참기지로 역할을 합니다.

일본은 대만에 철도, 도로, 전기 사회적 인프라를 깔고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한 각종 공장을 세우고 대만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군수물자를 생산, 공급하였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통치할 때는 우리의 글과 문화를 말살하고 창시개명을 강요하는 우리나라 고유문화 말살정책을 취하였고

일본 헌병이 통치를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여러 식민지국보다 더한 탄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저항은 일본의 식민지 국가 가장 치열하였고 지속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가혹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에 반해 대만은 일본 해군이 통치를 하였고 일본은 대만인에게는 유화책을 취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주고 월급도 제때에 지급하였습니다.

대만의 역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한번도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대만인들로서는 네덜란드인이 물러나니 정성공이라는 명나라 장수가 세운 정씨왕조가 통치를 하고,

다음 200년간은 청나라가 들어와 통치합니다. 이들 통치 세력은 대만인을 핍박만 하고 그들의 노동력만 착취하였는데,

일본인은 그들과는 달리 낙후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게다가 먹고살 있는 일자리까지 제공해 주니 대만인 입장에서는

일본의 통치가 좋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편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통치세력이 최고였던거죠!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를 받고 1945 8 15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일본이 항복하면서 대만은 70년간의 일본통치를 끝내고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으로 할양됩니다.

장개석 국민군은 대만에 들어와 보니 대만인 대부분이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식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이때부터 장개석 국민군은 대만인의 재산을 친일파라는 죄목으로 강제 환수하고 좋은 집과 일자리는 모두 그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대만인은 일본이 물러나고 같은 민족인 장개석 국민군이 들어오면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장개석 국민군은 대만인을 친일파라고 매도하며 억압하고 탄압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가 먹고살기 위해 밀수담배를 팔다가 단속반에 걸립니다.

단속원은 할머니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치고 발로 밟고 하였습니다.

모습을 지켜보던 대만인은 분개하여 단속원을 쫓기 시작했고 단속원은 근처 경찰서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분개한 내성인(대만인)들은 경찰서로 쳐들어가 단속인을 내놓으라고 항의하였고 경찰은 성난 대만인을 제압하기 위해 발포를 합니다.

과정에서 어린 학생이 총탄에 맞아 숨지게 됩니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대만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이른바 '228사건'입니다.

일본이 패망 장개석 국민군, 그리고 당시 국민군을 따라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사람들을외성인'이라고 합니다.

장개석이 2 국공내전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국민정부를 옮길 장개석과 함께 중국인도 외성인으로 분리됩니다.

지금의 대만 인구 구성을 보면 인구의 70% 내성인 18% 외성인 2%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내성인이 밀고 있는 정치 세력은 민진당, 외성인이 밀고 있는 정치 세력은 국민당입니다.

현재는 민진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228 사건은 외성인과 내성인 간의 최초의 충돌이었으며 사건으로 내성인이 3만명 정도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518 있다면 대만에는 228 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무튼 대만인(내성인) 기준에서 같은 민족에게 탄압 당하고 학살 당한 사건이죠.

지금도 228 사건은 역사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내성인과 외성인은 반목하고 있습니다.

대만이 친일 국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대만의 역사에서 찾을 있습니다.

대만은 독립국가로서 존재한 없이 어느 나라의 통치를 받아왔기 때문에 국가라는 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같으며 여러 나라의 식민역사를 거치면서 나에게 잘 해주는 나라나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같습니다.

여러 통치 국가 중에서도 일본이 통치할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대만인이 많습니다.

일본이 패망 같은 민족이 대만을 통치하였지만 대만인은 일본이 통치할 때보다 오히려 탄압 당하고 학살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일본 사랑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919년에 지은 대만총독부 건물은 김영삼 정부 해체된 조선 총독부와 유사합니다.

대만은 일본 식민 잔재인 대만총독부를 해체하지 않고 지금은 총통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https://band.us/band/83688897/post/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