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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광주로타리클럽 RI가입인준 30주년을 회고하며...

신바람투어/HL4CCM/김재호 2010. 11. 5. 17:38

RI가입인준 30주년을 회고하며...

                                                                             

                                                                                  창립회원 南坡 김 재 호

 

 지금으로부터 30년전, 1980년 봄은 유난히도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다.

특히 금남로와 충장로를 비롯한 옛 전남도청 주변에는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를 부르짓는 시위대열로 인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나는 당시 광주YMCA에서 사회교육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호남지역 중등교육자협의회(전교조의 모태) 총무직을 맡고 있다보니 전남도경과 광주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거의 내 사무실에서 상주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즈음 RI367지구 총재특별대표였던 故 은곡 김기창 전총재로부터 Paul Harris와 로타리이념 및 로타리정신에 대해서 소개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국제봉사단체인 YMCA에서 근무하고 활동하던 나였지만 로타리야말로 어느 국제조직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국제봉사기구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당시 로타리회원 평균연령에 훨씬 못미치는 31살의 나이에 북광주로타리클럽 창립회원으로 로타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80년 5월 1일 22명의 창립회원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가졌으나 민주화운동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국가긴급조치발령, 집회금지, 5.18민주항쟁 등 것잡을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광주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럽게 되었다.

집회를 함부로 못하게 되다 보니 창립총회 후 정식 주회를 거의 못하고 금남로2가 광주관광호텔 2층에 있던 로타리합동사무실이나 금남로3가 카톨릭센타 1층에 있던 이 계 옥 초대회장 사무실 등을 전전하면서 노변정담식으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창립총회 후 1-2개월 정도면 RI본부로부터 가입인준장이 내려오게 되는데 6개월이 넘어서야 RI가입인준장이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어언 30년세월, 국제봉사위원장을 비롯한 각종 클럽임원, 이사, 총무 2회, 회장 2회, 지구임원, 총재보좌역 등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꽤 많은 활동을 한 것 같다.

무의촌 의료봉사를 비롯해 낙도어린이 초청, 자매마을에 흑염소 기증, 산중마을에 한봉 벌통 기증, 타이페이 남문로타리클럽과의 자매결연 주선 등 회장과 총무 재임중에 추진했던 봉사활동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때로는 주회 참석인원이 7~8명밖에 안되어서 정식 주회를 못하고 좌담회로 대체할 때가 있었는가 하면 회원들간에 금전거래, 동업, 회사부도 등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클럽이 위태로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닥칠때마다 훌륭한 리더쉽을 지닌 회장이나 총무들이 나타나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해준 덕택에 이제는 지구대회때마다 최우수클럽이나 우수클럽 수상은 기정사실화 되고 창립스폰서한 子클럽을 세 개씩이나 갖게 되었고 재적회원수가 70명이 넘는 중견클럽으로성장하여 명실공히 타클럽의 모범이 될 뿐만아니라 지구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22명중 단 두명을 제외한 20명의 창립회원들, 이·취임식이나 RI가입인준기념식 때마다 입회선서를 했던 수많은 신입회원들, 그리고 긴 세월동안 희노애락을 함께했던 수많은 회원들!

그들은 과연 모두 어디서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을까!?

로타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발을 들여놓았다가 로타리의 이상을 맛도 못보고 떠난 회원들, 로타리를 통해서 자기 직업에 득을 보려다 실망만 가득 안고 떠난 회원들, 본인의 도산으로 인해 다른 회원에게까지 많은 피해를 안겨주고 떠난 회원들...

 

       조금만 참고 “그려려니~” 했으면 될 것을...

       지나친 욕심만 버렸더라면 될 것을...

       봉사를 통해서 돌아오는 기쁨과 희열을 한번쯤 맛보았더라면 될 것을...

 

 나는 지금 경제적으로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 혼자의 작은 힘으로는 큰 봉사를 못할 형편이다. 따라서 로타리클럽을 통해서만이 작은 힘을 보태서 지역사회에,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에 큰 봉사를 할 수 밖에 없다.

 

 로타리안 생활 30년!

이제는 로타리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지나칠 수 없는 내가 되고 말았다.

정년퇴임도 없는 로타리활동, 삶이 다하는 날까지 자랑스런 로타리안으로

남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