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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관광

신바람맨/HL4CCM/김재호 2008. 11. 13. 14:39

 

 북한 개성 관광

지난해 연말부터 개성관광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요관광지를 소개 합니다.

통일관 입구에서 북측 여성 접대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습니다.
 

범 사 정 

개성시 박연리에 있는, 1700년에 세운 조선시기 건물로 우리나라 3대 명폭의하나인 박연폭포를 옆에 끼고 대흥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언덕길 중턱에 있는 정자이다.  '중경지'에는 1700년에 이 건물을 세우고 옛 이름대로 현판을 달았다고 쓰여있다.

 

 

박연폭포

개성시 중심으로부터 26km 산성리의 천마산과 성거산에 끼어  계곡에 있고 높이는 35m이다. 박연이라고 불리는 직경 8m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고모담이라고  불리우는 직경 40m의 용추의 물가에, 큰 '용암'이 수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용추의 동쪽언덕에 범사정이라는 절이 있다.

옛날 어느 만월밤 박진사라는 청년이 불고 있는 피리소리에 홀려서,이 호수의 용녀가  그에게 반해 호수속으로 유인해가 버렸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슬픈 나머지 폭포밑에 몸을 던졌다. 그 이후에 호수를 박연이라하고, 폭포밑 담을 고모담이라고 부른다고한다.

옛날부터 조선 3대폭포 중 하나이다. 폭포는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名妓)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이른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선 죽 교

          (선죽교는 고려시대 후기의, 길이 8.35m, 너비 3.36m인 석조 다리) 

『고려사』에 의하면 이 다리는 1216년 이전에 건설되었고 건설 당시의이름은 선지교였다. 그 후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 다리에서 피살된 때부터 선죽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난간이 있는 다리와 없는 다리가 있는데 난간이 있는 다리가    선죽교이다. 이 난간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사람이 다니지 못 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난간이 없는 다리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그 곁에 새로 놓은 것이다. 선죽교 옆에는 "선죽교"라고 쓴 비석이 있다.   비문은 한석봉의 글씨로 전한다.

 

 

 

 

 숭양서원

숭양서원은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1573년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고려의 유학자였던 포은 정몽주가 살던 집자리에 고려시대 말에 처음 세우고, 조선시대 1573년에 고쳐지어 문충당이라 부르다가 1575년에 사액을 받아 숭양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숭양서원에서는 정몽주 외 16세기의 철학자인 화담 서경덕과 17세기의 학자이자 문학가인 잠곡 김육을 비롯한 유학자들을 추모하여 제사하였다.

 

 

만 월 대

만월대는, 919년 이후 고려 전기간에 걸쳐 왕궁이 자리잡았던 유적이다.
원래 이 궁궐안에 "망월대"라 불리던 궁전이 있어 어느 때부터인가 궁궐 전체를 만월대라 부르게 것이다.
과거엔 외침으로 파괴되고 방치되었으나 현재는 보수돼 잘 보존되고 있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그 남쪽 기슭 한가운데 자리잡은 고려 왕궁은 궁성과 화성을 합해서 125만㎡, 궁성만은 약 39만㎡의
면적이다.
 
           
                                                         
                 
                       
                                                    영 통 사
고려 현종 18년(1027년)에 창건되어 고려 왕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 융성했으나 16세기쯤 소실되어
이름만 전하던 사찰. 천태종 개창자인 대각국사 비와 당간지주, 그리고 세 개의 탑만 덩그맣게 남아있던 것을
남북이 힘을 모아 29개의 전각을 원 모습대로 세워놓았다.

 

 

왕건 왕릉 
고려 태조 왕건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 송악산 줄기가 뻗어내려온
만수산의 나지막한 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다.
943년에 창건된 것을 1994년에 개건하였다.
 
공민왕릉
공민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1365년~1374년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왕릉이다. 2기의 무덤을 동서로 나란히 세운 쌍릉형식으로,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서쪽)과 왕비(노국공주)의 무덤 정릉(동쪽)으로 이루어졌다. 공민왕은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공사를 직접지휘하였다.
 

 

 고려 성균관 
고려성균관은 개성시 방직동에 위치한 고려시대(992년)에 세운 국가 최고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1602~1610년)에 재건한 건물이다.
고려는 건국 초기 개경(오늘의 개성)에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를 세웠고, 992년에는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을 설립하고 여기에국자학, 대학, 4문학과 율학, 서학, 산학 등
6개 학과를 두고 국가 관리 양성 및 유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 국자감은 1298년에 성균감으로, 1308년에 성균관으로 고쳐졌다.
 
 
개성성 내성
개성성 내성은 고려 수도성인 개성나성 안의 일부 구간을 막아 쌓은 성이다.
축성 공사는 고려시대 말(1391)부터 조선시대 초(1394)까지 진행되었다.

 

 

 

 후 릉
후릉은 조선 2대 정종과 안정왕후의 쌍릉이다.
정종은 태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물러나 개성 백룡산 기슭의 인덕궁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왕후가 1412년에 먼저 죽고 1420년에 정종이 죽어 이 능에 묻혔다.
                                                                       

 

 

                        
고려박물관
                            고려성균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민 고려박물관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